이 영화에 대한 리뷰라고 부를 법한 것을 작성하기 전에, 제목을 어떻게 적느냐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미스트>라는 것은, 어떤 영화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뿐, 사실상 뒤에 이어지는 한 문장이 리뷰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적어야 하는 것일까, 감동을 적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짧은 평론을 적었어야 했던 것일까?

읽기 전 확인하는 영화 평론: 7.12 / 10.00
에피타이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의 스타일을 알고 보면 더 재밌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스포일러 없이>점수 설명만 확인하기
수많은 사람들이 <미스트>를 보고 실망했다고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팬이다. 고등학교때 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이미 대작가가 되어버린 스티븐 킹은 호러소설로 유명하지만, 혹자가 말하는 “인간은 공포에서 본성을 되찾는다”에 따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관성있는 글, 세심하게 설명되어 있는 부분들은 영화감독으로 하여금 영화화하는데 구미가 안당길 수 없었으리라. 무엇보다 안개mist는 잘 알려져 있듯이 드라이아이스만 사용해도 충분히 연출할 수 있을 정도로 고예산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였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잘 팔리는데, 어째서 영화는 안팔리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용이 좋다면 그 다음 부터는 영화감독이 멋들어진 연출과 CG를 사용하면 충분히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우민들의 말에 멋진 영화가 썩어가는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우려심마저 생겼다. 아마추어 평론가라면 평론가겠지만, 오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스티븐 킹의 소설이 이렇게 무너졌는가”
그리고 곧장 영화를 틀었다: 안개와 정체모를 괴물들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미스트>를 접할때 정체모를 괴물이 안개속에서 슈퍼마켓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공포로 몰아세우는 <에일리언> 시리즈와도 같은 분위기를 원했었던게 아닌가 혹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였다. 특별히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을 생물들. 단순히 차이가 있다면 그 크기와 모습이 일반 생물과 다를 뿐, 사실상 무언가를 먹이로 삼고 있는 생물이라는 점은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뇌를 키운 <딥블루씨>의 상어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것도, 이유가 있어 부림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갑자기 슈퍼마켓을 덥친 안개속에서 살고 있을 뿐이였다.
여기서 관람자의 관점이 갈린다. 스티븐 킹의 스타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결국 밖에 있는 괴물들이래봐야 어디까지나 장식일뿐이고, 요는 슈퍼마켓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안에 있는 사람들에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걸. 사람들이 힘을 합쳐 슈퍼마켓을 요새화하고 지키는 것을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위험에 닥쳐 고립되었을때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정작 괴물이 몇 나오지 않는 다는 사실에서 정말 스티븐 킹이 원했던 것은 괴물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버릴 수밖에 없다. 하척장에서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다투고 싸운 후에 한 사람이 희생될 때까지, 사실상 위협은 ‘촉수’뿐이였다. 그리고 그 촉수때문에 다시한번 이런저런 이야기가 발생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 발생하는 것을 보다보면 아무래도 진정한 괴물은 ‘정체모를 안개’쪽이지, 안개 속 안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괴물들 쪽이 아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진부할 정도로 지루한 두 캐릭터가 나왔다: 변호사와 젊은이
옛말에, 고지식한 사람과 혈기왕성한 젊은이는 패고 보라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은, 고지식한 사람은 사람을 속이고 일어날 일들을 무시하고 젊은이들은 나서서 일을 벌이다 죽기 쉽상이였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의 제 1법칙 이라고도 할 법한 이것은, 아무래도 처음 이것을 생각해낸 영화감독의 복수전(?)이 아니였을까 한번 웃으며 생각해볼 법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했을 지 상상하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주인공이 환상을 보는 듯한 기미도 없고, 변호사는 단순히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방어본능에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청년을 부추기는 다른 두 남성들은 아예 “대학나온 남자가 뭘 아냐”라며 주인공을 무시하고, 정작 눈 앞의 죽음을 바라봤어야 할 청년은 무슨 생각인지 나가겠다고 난리다.
분명 방금전까지 한 노인의 허탈한 “화학 공장 약품이 유출된 것 같다”라는 말은 듣기나 한 것인가 싶을 정도다. 무엇인가를 들었다는 주인공의 말이 헛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지만, 유독 짙어보이는 그 불화의 정도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피흘리며 슈퍼마켓으로 도망온 “Something in the Mist!”라고 외친 남자의 말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무시당할 수 있을까?
변호사는 변호사 답게 현실적으로 문제를 직시한다. 그것도 매우 변호사 같은 방법으로. 적절하게 말을 꼬아, 사람들을 선동하고 여기서 죽던가 아니면 밖에 나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문명인이 할만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법원에서 그렇게 건수를 잡는 변호사가 많다지만, 실제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고 당당히 걸어나가 죽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스티븐 킹 특유의 인물이 곧이어 등장한다: 종교인
스티븐 킹 스스로가 종교비판적인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 상에서 사용된 문구들은 실제로 성경안에 있는 부분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정도로 오버하는 한 정신이상자의 해석이 딸려붙어있을 뿐인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 중 얼마나 많은 종교가 실제로 같은 성서를 사용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이 문제는 아무래도 ‘사이비’와 ‘정식 종교’를 가르는 차이가 되겠지만, 결국은 거기서 거기다.
대부분의 리뷰는 작위적이고도 우연적인 흐름에 대해서 일침을 가했다. 어째서 괴물이 이 종교인을 살려두었는가, 이 종교인이 말한데로 실제로 괴물들의 공격이 없었던 점, 그 괴물들의 특성과 공격방식이 그녀가 읽는 성서의 구절과 너무나도 비슷했다고 이야기들 한다. 한마디로 ‘내가 봐도 따라가게 생겼구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글쎄, 필자가 귀뜸하자면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자기방어본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뱀의 경우, 실제로 원해서 문다기 보다는 두려움에 먼저 물고 도망가는 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뱀은 사악해서 먼저 물고 튄다’라기 보다는, ‘죽기전에 발악이라고 해보자’라는 셈으로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이 종교인은 “주님의 뜻”이라며 선뜻 몸을 내미는 경악할 만한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였는데다가, 정말 전문 산악인인양 멋드러지게 괴물들을 피했다.
하지만 막상 그녀의 행동이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신을 믿고, 따르는 자. 사실상 그녀는 자기 눈 앞에서 신에게 간택이라고 받은 듯한 기적을 본 상황이였고, 기쁘고도 펄쩍 뛸 만한 상황이였다. 처음 선동된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의 예언이 맞았다”라며 따라갔지만, 과연 그것 뿐일까? 눈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괴물이 지나가버린 이 여성을 믿고 따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없었을 까에 대해 묻기 시작하다 보면, 이해가 가기 마련이다.
괴물들이 서로 잡아먹고,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다. 사람들이 사고로 죽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모험 이야기들, 무인도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성공적인 개척을 기준으로 한다. 보물섬이라면 선원으로써의 생활에 익숙해진다던가,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 대농장이라도 차린양 점점 문명화된 삶을 살아 간다. 단 한번의 실수 없이. 심지어는 어떤 사고가 있어도, 그 사고에 대한 대처법이 즉시 즉시 나온다던가, 이미 경험했던 일이라 문제 없이 넘어간다. 로빈슨이 섬에서 몸이 안좋다며 담배연기를 들이쉬는걸 보면서, “보통 일반인이였다면 이미 간단한 감기로도 죽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도저히 접어둘 수 없었다.
스티븐 킹은 완벽한 사회를 정확하게 부정한다. 개사료를 높이 쌓아 유리를 보강하고, 앞문은 냉장고로 막기까지 하지만 괴물들은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다. 그 뿐이랴? 심지어 예상됬던 공격을 방어하는데는 너무나도 뼈아픈 희생이 있었다. 대걸레에 불을 붙혀 공격하려다 사람이 화상을 입고, 괴물을 잡기 위해 권총까지 꺼내들었지만 막상 주인공의 아들이 “아빠를 보러 가야 한다”라며 길을 막는다. 아이를 보기로 했던 한 노인은 힘에 부쳐 아이가 괴물에게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는게 고작이였고, 불을 따라 괴물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불을 끄지 못했다. 더군다나 창가에 있던 한 남자는 다른 괴물들을 잡아먹는 괴조에 죽었다.
로빈슨 크루소같은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힘을 합쳤는데, 그리고 준비까지 했는데 막상 괴물들이 달려들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란 이런 것이다. 심지어 군대라 하더라도 이들에 대해 확실히 알고 명령체계가 구현화되어 있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 휘발유를 담아두었던 통은 길 한복판에 있었고, 감시를 보던 감시꾼은 유리창 앞에서 음식을 먹었다. 어떠한 규칙도, 어떠한 지휘도 없는채로 일반 시민들이 순식간에 힘을 합쳐 괴수를 막겠다니, 현실적으로 가능할리 없다.
안개의 정체가 밝혀진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였는데….
사람들은 이미 하나 둘씩 사이비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심각한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줄만한 진통제하나 제대로 없는 상황이였다. 결국 몇몇 인원이 모여 옆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가져오기로 하고, 그곳에서는 또 다른 괴물들은 만나버린다. 동시에 ‘군대가 다중세계에 관련된 실험중이였다’라는 말이 자살하지 않은채 살아남은 한 군인의 입에서 나온다.
이 군인은 말단 중의 말단이였다. 이미 영화 시작부터 군대에서 실험중인 무언가의 문제로 인해 이 안개가 발생했다는 복선은 충분히 깔려있었다. 과학자들이 창문을 만들었네, 문을 만들었네, 하지만 결국 영화상에서는 어쩌다가 실험실 바깥으로 이 영향이 끼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게 끝이다. 다시한번 SF를 기대했던 관람들에게 실망을 끼쳐버린 대목이다.
사이비 종교단체는 방금 사랑하던 여성을 잃은 이 청년이 모든 문제의 발상이라며, 피의 제물로써 바깥에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던져진다. 그 누구도 죄책감따윈 느끼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으로 던진다. 정말 사이비처럼 느껴지는가? 현실세계에서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도산으로 더이상 운영이 불가능한 회사의 공장 앞에서 시위중이던 노조, 망해버린 옛 제국을 희망하며 다시 전쟁과 테러를 일삼는 패잔병들의 이야기 따위 얼마든지 있다.
도망가자! 막상 그러려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주인공이 차를 가까운 곳에 세웠으니, 이 차를 몰고 도망가자는 의견이 나온다. 식량을 빼돌려 들고 도망가자라는 말까지 나온 마당에, 막상 도망가려고 문 앞에 서보니 이미 예언자가 “이제는 식량까지 훔칠 셈이냐”라며 쏘아부친다. 하는 수 없이 2발의 탄환으로 예언자를 죽이고, 정신이 다시 헤이해진 사람들 틈을 떠나 나가고 보니, 주차장은 괴물이 가득해 차로 향하던 사람들 중 몇몇도 어쩔 수 없이 마수의 손에 당했다.
총 인원은 5명, 달려나가 차를 타고 슈퍼마켓을 조명등으로 비추며 도망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도망가고 보니 주인공의 부인은 이미 거미에 당해 처참하게 죽어있는 상황이였고, 가다보니 기름은 떨어졌다.
4발뿐인 총탄을 바라보면서 주인공과 그의 마지막 4명의 동료들이 선택한건 동반 자살이였다.
그리고? 군인들이 지나가며 하나둘씩 괴물들을 화염방사기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스티븐 킹 특유의 스토리와 적절한 연출이 어우러졌다. 하지만….
이미 위에서 한번 적었듯, 스티븐 킹은 극적인 상황에서의 진정한 인간상와 인생사를 그리려고 하는 작가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끼치는가, 그 영향력이 얼마나 무한한지에 대해서 뼈아플 정도로 솔직하게 고백한다.
워낙 거장의 작품이였는지라, 감독도 원본에 손을 대는 것을 거부했었던 모양이다.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요소와 연출들은 이야기에 집중하기 편했고, 적당한 수준으로 집중할 수 있게 끊김없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아니, 평가할 수 없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주제는 스티븐 킹이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는지, 그것을 영화화하는 감독의 손맛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몇몇사람들이 대본을 들고 읽기보다는, 그 순간 순간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들을 보면서 이러이러한 인간상에 대한 감동을 느끼기를 원했지 스티븐 킹 팬이나 마니아들의 눈요기를 위해 이 영화를 감상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을 매길때, 10점 만점 중 5점은 스티븐 킹의 이야기 때문이였다. 오직 그 뿐이였다. 이 자리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그 자체’이지, 스티븐 킹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필자가 반대되는 요소들을 사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이야기는 걸작으로 평가되었고, 그에 마땅한 명성이 있었으니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다.
2.12, 이것은 내가 감독과 한국 배급사에 주는 점수이다.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포스터와 미국에서 개봉되었던 포스터를 다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아무리 한국에 스티븐 킹의 팬이 적다고 하지만, 스티븐 킹의 “미스트”를 영화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은채 영화를 관람하기에는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었다. 도저히 스티븐 킹의 팬들 외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분위기와 진행도였다. 차라리 미국에서라면, 스티븐 킹의 인기가 절대적인 미국에서라면, “Stephen King’s”라고만 써두어도 사람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감독에 더 치중되어 있는 한국의 포스터를 보거든, 정작 이야기를 영상화했을 뿐인 감독의 무책임함을 광고하는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이 영화는, 그렇게 국내 소수 스티븐 킹의 팬을 위해 개봉된 영화로 홀대됬다. 관람객에게 친절을 배풀지 않는 것을 과연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차 의문이다.




플래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얼마 안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14년이나 지난 포맷이다. 사실상 데스크탑 PC를 대상으로 하는 포맷인데다, 잡스 말마따나 터치UI를 위해 다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면 차라리 새로 나온 HTML5나 자바스크립트로 짜는것이 나쁠 것은 없다.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플래시를 정말로 좋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플래시를 싫어하면서도, 플래시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몇 안되리라 본다. 단지 여기서 난감한 점은 잡스의 말도 안되는 언변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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