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한문학을 불문하고 일단 작문이라는 것은 현대인의 골머리를 썩히는 일 중에 하나 일 것이다. 그냥 단어를 나열해놓은 것인 주제에, 한번 역사에 한획을 그어봅자 하고 걸필을 쓰자 하면 그게 그 수준이다. 사실상 훈련 없이 작문을 한다는게 불가능한 사회를 살아야만 하는 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자면, 우습기 까지 하다.
한국인이 애먹는 글쓰기 중 하나는 아무래도 스스로를 소개하는 에세이 일 것이다. 대학, 직장 부터 시작해서 사사건건 어떠한 일이더라도 일단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만 벗어났다 하면 심심찮게 ‘잘쓴 에세이 하나, 아이비 학력 부럽지 않다.’라는 시시껄렁한 농담마저 들을 수 있다. 한국의 평준화된 제도와는 다르게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다보니, 아무래도 에세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개인적인 취미(?) 생활 중 하나로 남의 에세이 읽기가 있다. 토플부터 시작해서 대학, 직장에 내는 에세이까지 일단 묶여만 있다면 그 책부터 읽고 본다. 에세이를 읽어보고, 나라면 이렇게 고치리라, 이런 점수를 주리라, 이런 사람이라면 채용하리라, 이런 사람은 이런 인격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어찌보면 끔찍할 정도로 소름돋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얼마전 구입한 서적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One of the best essays in this book, Essay 107, is also the shortest. It includes all of seventy-eight words on why the author wanted to attend Yale. (He got in and the admissions office made a point of commending the essay to his school counselor.)
이 책에 있는 가장 우수한 에세이 중 하나인 에세이 107번는 동시에 가장 짧기도 하다. 이 에세이는 작가[학생]가 왜 예일에 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모든 것을 78자에 담았다. (그는 예일대에 들어갔고, 입학처에서는 해당 학교 카운셀러에게 에세이에 대해 격찬했다)
예전에 들었던 2행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시’의 전설 이후로 이런 일은 또 처음이였다. 평소에 짧디 짧은 50자 단편 소설을 읽고 있다지만, 78자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무려 예일대에 들어간 것도 모잘라 해당 학교에 우수하다며 공적인 문서까지 보낼 정도라니, 도대체 어떤 글인지 읽어 보고 싶어 주체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래서 곧장 책의 뒷편을 찾아 헤맨 이후에 발견했다.
Upon a recent Yale visit, I conversed with a Yale senior in the admissions office about his experiences. He had only two complaints about the university: there were too many student protesters, and the university sands the roads instead of salting them in the winter. I love that Yale is a place where the students are motivated to change the world, and the faculty encourages them to act. Sanding saves the environment. What annoyed this Yale student impresses me.
최근 예일대를 방문했을 때, [주: 대부분의 미(美)고등학생은 입학하기를 원하는 대학을 먼저 방문해 본다] 나는 예일대의 대학교 4학년생과 입학처에서 그의 [대학에서의]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핵에 대해서 단 두개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많은 학생 데모가 있다는 것과, 대학에서 겨울에 길에다 염화나트륨대신에 모래를 뿌린 다는 것이였다. 나는 예일이 학생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꾸도록 장려하고 있다는 것과 교직원들이 이를 복돋고 있다는 점이 좋다. 모래를 뿌리는 것은 환경을 구한다. 이 예일대 학생을 짜증나게 만든 점들이 내게 인상 깊었다.
돌팔이 심리학적(?) 분석을 조금 돌리자면,
- 이 학생은 예일대를 방문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고
- 모르는 학생과 대화를 시작할 정도로 사회적이며
- 예의 학생이 싫어하는 점마저 예일을 좋게 볼 정도로 예일을 좋아하고
- 그리고 예일이 실제로 추구하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 무엇보다 그걸로 에세이를 써내도 괜찮다는 확신은 어디에 있었을까
사실상 세간에서 보면 이 학생은 ‘예일빠’다. 애초에 다니고픈 대학이다 보니 방문을 해보고, 해당 학교에 있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실제 재학중인 학생이 불만을 표하는 부분마저 장점으로 보고 이를 예일의 ‘깊은 뜻’으로 표현해버렸으니, 이 정도 수준이면 이미 중증이다. (따라서 4번에 대해서 논란이 발생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단지 내가 놀랬던 점이라면, 이 학생은 정말 미국 대학 입학처의 수준과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싶었고, 스스로 말을 줄일 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말을 줄이고도 실제 내용은 많은 것을 해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학교 카운셀러가 이 에세이를 받아 들고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학교의 명예를 치켜세웠음에는 틀림이 없지 않을까 싶다.
한 개인이 개인으로 있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는 무한히 많지만, 그 사람을 이루는 그 기본 골격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이를 글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재능인 것이다. -R